[전준호의 실크로드 천일야화] 30. 다시 잇는 실크로드

2016년 3월부터 2017년 1월까지 29회분의 실크로드 기행을 연재 했다. 둔황을 시작으로 수년간 실크로드를 누빈 결과물이었다. 필자의 사정으로 중단된 여정을 다시 잇는다. 국내 실크로드 최대 권위자인 정수일 선생의 옥중편지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가 다시 발걸음을 내딛는 힘이 됐다.

칭짱열차가 티베트 고원을 달리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중국 베이징서역에서 라싸로 가는 칭짱열차표(위)에 열차 시간표와 좌석, 가격, 여권번호, 영문이름이 적혀있다. 기차에 올라타면 승무원이 열차표를 거둬가고 플라스틱 카드(아래)를 나눠준다.

한가위를 며칠 앞둔 9월19일 오후 6시쯤 중국 베이징서역은 사람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10여 년 전 노동절 주간에 이곳 최대 번화가 왕푸징에서 인파에 몸을 실은 기억이 어슴푸레 떠올랐다. 인산인해다.

역을 들어갈 때도 공항처럼 보안검색대를 통과해야 했다. 비행기 수화물칸에 실었던 짐가방은 물론이고 망원렌즈와 삼각대 배터리를 넣은 백팩, 여권과 지갑을 넣어둔 파우치백, 카메라까지 예외는 없었다. 이날만 인천공항부터 베이징 서우두공항, 옹화궁에서 검색대를 거친데다 그 후로도 귀국 때까지 이 통과의례는 하루에 서 너 번씩 반복됐다.

베이징서역에서 라싸로 가는 열차는 매일 오후 8시 출발한다. Z21 열차가 고정이다. 오후 7시30분을 넘기자 역무원이 개찰구를 연다. 시간이 넉넉한데도 뭔가에 쫒기듯 플랫폼으로 뛰어들었다. 이제 막 열차에 올라타기만 하면 되는데 라싸 순례길에 가장 큰 복병을 만났다. 일행 중 대전에서 혼자 온 중년 남성의 열차표에 오류가 있었다.

외국인의 탑승권 왼쪽 하단부에 찍힌 여권번호가 달랐던 것이었다. 한국에서 신상정보를 잘못 보낼 리는 없었다. 보안검사를 한 티베트 당국에서 실수를 한 것으로 추정됐다. 가이드는 이미 라싸에 도착하면 제대로 된 증명서를 받기로 손을 썼지만 문제는 열차에 올라 탈 수 있느냐였다.

객차 출입구마다 보안검색이 다시 진행됐다. 얼렁뚱땅 타보려던 시도는 보기좋게 들통났다. 역무원 두 세 명이 달려들더니 탑승불가 판정을 내린다. 라싸행이 좌초될 위기였다. 다른 일행 12명도 불안 초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길고 긴 몇 분이 흘렀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던가. 베이징 가이드는 누군가의 조언을 듣고 이미 손에 약간의 급행료를 꼬기꼬기 쥐고 있었다. 어슬렁거리던 책임자와 몇 마디 후 잠시 시야에서 벗어나더니 탑승허가 판정이 떨어졌다. 긴장의 끈이 탁 풀렸다.

칭짱열차 주변의 고원 목초지에 작은 강이 흐르고 멀리 산에 무지개가 떠 있다.
◇40시간 40분, 라싸 꿈도 꾸고 열차투어도 하고

열차에서 가장 좋다는 4인 침대칸인데도 좁아 터졌다. 방 한 칸에 평균 큰 가방 4개, 백팩도 4개는 기본이었다. 궁하면 통했다. 40시간여 동안 편하게 입을 옷과 슬리퍼 컵라면 햇반 반찬 팩소주를 좍 늘어놓으니 선반에 무허가건물을 쌓아야 했다. 부피가 준 가방을 양쪽 침대 밑으로 하나씩 구겨 넣고, 하나는 선반 밑에, 마지막 하나는 출입문 위 빈 공간에 쑤셔 넣었다.

오후 8시 정각 칭짱열차는 미끄러지듯 출발했다. 이제 라싸까지 4,064㎞를 40시간 40분에 걸쳐 달리는 일만 남았다. 열차가 출발하자 역무원이 탑승권을 거둬가고 플라스틱 통행카드를 나눠줬다. 다시 짐 정리에 30분, 옆방과 객차 시설 구경하는데 30분이 걸렸는데 들뜬 마음은 영 진정되지 않는다.

밤이라서 바깥 야경이라고 할 건 없었다. 베이징을 빠져나올 때까지는 도시의 불빛이 화려했지만 시골로 벗어나는 순간 암흑뿐이었다. 출발 2시간30분쯤 지난 오후 10시30분쯤에 열차는 스좌좡역에 잠시 섰다.

2층 침대에 누워있으니 열차가 덜컹할 때마다 자동으로 마사지가 됐다. 천장에서 에어컨이 나와 살짝 추웠지만 베개에 머리 붙이기 무섭게 라싸 꿈을 꾸기 시작했다.

다음날인 20일은 열차에서 하루를 꼬박 보내야 했다. 밤 사이 타이위엔을 거쳐 오전 7시쯤 중웨이에 잠시 섰다. 오전 9시쯤 창밖은 거대한 풍력발전소 세상이었다. 바람이 많이 부는지 풍차가 수도 없이 많았다.

일찌감치 열차 투어에 나섰다. 세어보니 객차가 모두 15개였다. 1~4호차는 객차마다 6인 침대방이 10개씩 있었다. 잉워라고 불리는 6인실은 한 방에 침대가 양쪽으로 3층이었다. 방이라지만 문은 없었고 1호차는 통로 중간부터 통행금지였다. 승무원의 휴식공간이었다.

칭짱열차 승객들이 열차 통로에서 도시락을 주문하고 있다. 승무원들은 객차를 누비며 도시락과 과일, 음료수 등을 팔고 있다.
칭짱열차 식당칸에서 요리사들이 음식 재료로 쓰는 야채를 직접 키우고 있다.

5, 6호차에는 객차마다 루안워로 불리는 4인 침대방이 8개 있었다. 6인실을 보다 이곳에 와 보니 별 다섯 개 호텔이 따로 없었다. 심지어 방문도 있어 사생활도 보장됐다. 6인실 복도에는 음식을 놓고 먹을 수 있도록 선반도 있었는데 4인실 통로에는 당겨 앉는 의자만 있을 뿐 탁자는 없었다.

식당인 7호차를 넘어가니 갑자기 풍경이 달라졌다. 8~11호차는 객차마다 통로 양편에 각각 6명, 4명이 마주 보는 잉쭈오, 즉 좌석이 10칸이나 됐다. 비좁은 틈을 살려 남편 허벅지에 머리를 베고 잠을 청하고 있는 여성도 있고, 얘기꽃을 피우는 연인도 있었다. [content9bfakn.clubcontent10카지노사이트content11카지노사이트content12]

베이징~라싸 열차비용도 객차마다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좌석칸이 360위안(5만9,040원), 6인실 763위안(12만5,130원), 4인실이 1,186위안(19만4,500원)이었다.

티베트 장족의 얼굴이 많이 보이는 좌석칸을 넘어서니 다시 6인실이었다. 호기심에 객실 사진을 찍었더니 지나던 여성 승무원이 막는다. 프라이버시 보호란다. 12~15호는 다시 잉워였다. 반환점을 찍고 6호차로 돌아오는 길에 객실간 문이 차단돼 한참 기다렸다. 이때 바로 통행카드가 필요했다.

열차에서도 휴대폰을 열심히 검색하던 일행이 “러시아횡단열차에 내년부터 6인실인 ‘플라츠 카르타’가 사라진다”고 알려줬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까지 7일간 6인실을 타는 것은 무리지만 열차칸의 낭만이 사라지는 것은 많이 안타깝다.

칭짱열차가 칭하이성 거얼무역에 잠시 정차해 있다. 해발 2,800m 안팎인 이곳부터 열차 안에는 산소가 자동 공급된다.

열차는 란저우와 시닝을 거쳐 밤 10시쯤 거얼무로 접어든다. 그냥 칭짱열차라고 부르기는 했지만 실제 칭짱선은 칭하이성 시닝과 시짱자치구 라싸까지 1,956㎞를 말한다. 시닝~거얼무 구간 814㎞는 1984년 개통됐고 거얼무~라싸 1,142㎞ 구간이 2006년 7월1일 개통되면서 칭짱열차라 불리고 있다.

이 구간 중 해발 4,000m 이상이 85%, 연평균 기온은 0도 이하, 산소함량은 평지의 50~60%다. 열차 안에서도 해발 2,800m를 넘어서면 자동으로 산소가 공급되고, 좌석마다 별도 산소공급기가 비치돼 있었다.

탕구라역은 해발 5,068m에 만들어졌고 길이 1,338m의 풍화산터널은 4,905m 높이에 뚫렸다. 중국정부는 라싸까지도 성에 차지 않아 2014년 8월 라싸~시가체 251㎞ 구간을 연장 개통했다. 가히 2의 만리장성으로 불릴 대역사다.

시짱자치구의 주도인 라싸 주변 지역에서 도로와 교각 공사가 한창이다.
라싸역에 도착해 승무원에게 사진을 같이 찍자고 했더니 손사래를 치며 돌아서고 있다.

열차는 설산을 배경으로 무지개 걸린 고원 초목지대를 통과하면서 무협지 속의 한 장면을 달린다. 푸른 하늘 흰 구름이 바짝 가까워졌다고 느끼는 순간 코스모스가 핀 철길 옆 고속도로 공사현장에는 빨간색 모자를 쓴 인부가 툭 튀어나온다. 서부대개발이 끝도 없다.

21일 낮 12시40분 드디어 라싸역이다.

jhjun@hankookilbo.com